ALWAYS FOR YOU

O N - S A R A N G H O S P I T A L

회복수기

중독폐해 예방 및 회복수기 공모 당선작으로
온사랑병원의 입원치료를 받은 환우의 수기입니다.


온사랑병원은 20년 이상 진료에 몸담아온 전문의들과 전문상담 치료팀(정신전문간호사, 정신건강사회복지사)이 각 환자의 단계에 맞춘 집중적 치료를 통해 회복에 이르는 길을 제시합니다. 알코올 중독 환자가 회복을 통해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개인별로 정신건강의학적 접근을 하고 있으며 개개인 맞춤 관리·상담·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온사랑병원은 반드시 회복하도록 돕습니다.

단주수기 수상작 소개
제일 먼저 당신, 우리 딸 00이 XX이에게 참 미안하고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나의 가족에게 감사편지를 쓸 수 있도록 기회를 준 병원측에 감사한다. 당신과 나는 맞선을 봐 결혼을 했고 얼마간은 당신의 사랑과 보호 아래 ‘나는 참 행복한 여자다.’ 하고 살아왔어요.

큰 애와 3년 뒤 둘째를 낳고 둘 다 수술하면서 엄마를 힘들게 했어. 그러나 그것도 잠깐 자라면서 즐거움과 엄마가 살아갈 수 있게 용기와 열정을 함께 주었지. 직업상 술에 취해 매일 늦게 귀가하는 당신을 기다리며 나는 아이들과 시간을 많이 가졌어. 보상이라도 하듯 휴가철이면 어김없이 일급 호텔을 예약해 3박 4일을 여행 다니4고 최고의 음식을 맛보게 해주었지. 나 혼자 외출만 하지 않으면 부족한 것 없이 다 해주었어. 그런데 너희들이 커가면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말도 나눌 상대와 친구도 없고 웃을 일도 없고 그 옛날 겪었던 우울증과 불면증이 함께 찾아와 나를 압박하고 점점 더 심해졌어. 당신께 말하려고 해도 늦게 들어오고 아침에 출근하는 뒷모습에 점점 기회를 놓쳐버리고 원래부터 당신과 식사 때 곧 잘하던 술을 잠이 안 오면 습관처럼 몰래 마시곤 했지. 할머니 댁 제사나 병간호할 때에는 피곤해서 마시고 몸이 안 좋아 얼마간 끊었다 다시 마시고 그렇게 술 마신 후 주사를 부리거나 실수하지 않고 그냥 자버리니까 그때까지 나의 술 문제가 그렇게 심각하다고 느끼지 않았어. 대소사나 꼭 내가 나서야만 했을 때는 술을 안 마셨으니까 그리고 밤에 몰래 마시니까... 당신과 너희들도 눈치채지 못했지.

여보, 얘들아. 병원에 입원하면서 쉽게 끊을 줄 알았던 알코올리즘이 이렇게 어렵고 당신과 너희들에게 큰 짐이 될 줄 몰랐어. 셀 수 없을 만큼 입퇴원을 반복하면서도 당신과 너희들은 면회를 와 나를 격려해주었고 이번에는 끊겠지 하는 믿음과 희망을 가지고 기다려 주었지. 그때부터 지금까지 당신과 너희들 기대는 저버리고 단주 기간은 짧아지면서 실망만 안겨주었어. 그런데 단주하려면 뭔가 머리를 스친다 하더니 이건 아니다 싶어. 내 중년의 시기를 거의 병원에서 다 흘러보내고 ‘이젠 끊겠다.’ 하는 말도 거짓말이 되어 버려서 나는 양치기 소년이 되어 버렸어. 이제는 집 걱정도 안될만큼 당신은 불심으로 잘 견디고 있고 너희들도 아빠 보살핌에 잘 지내고 있어서 참 고마워. 이제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 기회가 있을 때 놓치지 않는다고. 꼭 단주에 성공해서 예전의 나로 천천히 돌아갈게요. 서두르지 않고. 애들아 너희들도 지켜보렴. 엄마가 어떻게 술을 끊는지.

예전 어린이날 함께 보냈던 즐거운 날을 기억하며....
항상 단주와 싸움에 나는 지고 절망에 빠졌다.
어린 나이였던 20대 초반에 이미 환청, 환시, 환촉 등 환각 경험을 수십 번씩 했고 내 힘으로 견디기 힘들어서 병원도 여러 곳 입원하여 치료 받고 나오곤 했었다.

퇴원과 동시에 단주라는 결심과 의지는 강했다. 하지만 어린 나에게 ㄴ큰 사회라는 현실과 가족간의 갈등으로 인해 또 다시 술을 마시곤 했다. 처음으로 입원한 병원에선 나는 알코올중독자라는 것을 인정하지도 않고 받아드리지도 않았다. 어느 병원이 이었을까 나는 그곳에서 알코올 프로그램을 통해서 내 자신의 병과 나의 행동을 알게 되었고 깨달았다. 내가 알코올중독이라는 것을 받아드리니 마음이 편안해졌고 치료를 열심히 받기로 노력했다. 알코올에 대한 지식과 A.A모임이라는 좋은 모임도 알게 되었고 그 병원을 퇴원한 후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A.A 모임을 다니며 하루하루 단주하는 것의 즐거움과 술 대신 다른 먹을 것이라든지 운동 등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게 되고 일상생할이 너무 즐거웠다.

그렇게 6개월~1년까지는 괜찮았던 것 같다. 사람의 심리가 참 무서웠다. 어느 날 편의점에 들어가서 주류 코너 앞에서 소주를 꺼내드는 것이었다. 1년 종도 참았는데 이 한 병 정도는 괜찮겠지 하고는 계산을 하고 마시게 된 것이다. 그렇게 1년 간의 단주는 그 1300원짜리 소주 한 병에 날아간 것이다. 먹고 술 취했을 때에는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그 좋은 순간도 잠깐, 술을 깨니 절망이 너무 컸다. 그만큼 노력했는데 날아가 버린 것이다. 그 괴로움에 더 마시게 되었다. 점점 술에 취해 내 자신이 불쌍해지기 시작했고 그 알코올 인해 가족과도 싸움이 나기 시작했다. 나는 원망스러웠다. 알코올은 자기 의지만 있다면 끊을 수 있다고 쉽게 표현하는 사람들이...

나는 이번에도 병원에 3년 만에 입원을 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내 자신이 알코올 중독자이며 알코올 뿐 아닌 내 마음의 병도 치료할 생각이다. 또 다시 언제 마실지 모르는 알코올 때문에 더 조심스럽게 생각하며 주의해야겠다. 단주는 정말 말로는 쉽지만 실천이 제일 중요하고 하루하루 머릿속에 단주라는 단어는 뺴먹어서는 안 될 단어이다.
50이 넘어가는 삶을 지나오며 돌이켜볼 때에 ‘쓸모’라는 단어는 세상 어떠한 단어보다 나에게 무서운 단어인 것 같습니다. 스스로 어디든 쓰일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다시금 돌아보니 어린 시절부터 나는 사실‘쓸모없는 사람’이지 않았었나? 하는 질문을 되뇌게 됩니다.

살아오며 첫 번째 희망을 가져보려 노력하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부모님께서는 정말 많이 싸우셨습니다. 술에 취해 싸우고 집에 있는 물건들을 부수고 때리고 피투성이 집안... 동생들을 돌보며 무섭고 힘든 상황을 이겨보려 노력했으나, 마음은 그렇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하루하루 ‘부모님 곁을 얼른 떠나고 싶다. 이 상황들을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으로 매일 매일을 버티고 또 견뎠습니다. 그렇게 성인이 되어 어느 날, 결혼이라는 달콤한 희망을 보게 되었습니다. 한 남자와 결혼을 하고, 세 아이의 엄마가 되고, 평범한 가정이라 생각했습니다. 어린 시절의 불우했던 나의 상황이 평범해졌다고 생각했습니다.

도망치듯 선택한 희망이라 그랬을까요? 결혼생활의 시간이 흐를수록, 남편과 저의 시간이 다르게 흘렀습니다. 처음과 달리 남편은 가정에 무관심해지더군요.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아들과 어린 두 딸이 있는데, 함께 아이들을 지키고 돌봐줘야 할 남편이 경제력을 상실하고, 밖으로 떠돌며 도박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가정을 지키기 위해 어린아이들을 뒤로한 채 회사를 다니며, 식당일 아르바이트 등 백방으로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나아질 수 있을 거라 믿었기에 아무리 고단하고 힘들어도 정말 열심히 일하고, 아이들을 그리고 가정을 지키려 헌신했습니다.

너무 쉼 없이 살아가고 있는 게 고단하여 사람 붐비는 곳에 멍하니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세상 가장 행복한 미소를 띠고 힘차게 걸어 다니는 사람, 지금 이 자리에 폭탄이 떨어진다 해도 놀라지 않을 만큼 무뚝뚝한 표정을 지닌 사람, 뜨거운 햇살이 불쾌한 지 잔뜩 화가 나있는 사람 등 그 어느 누구도 같은 얼굴, 같은 느낌, 같은 표정을 지닌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 모습들을 바라보며 드는 생각이 ‘그래도 여기 있는 모두들 행복 하고 싶고, 행복할 거라고 믿고 바라기 때문에 열심히 살아가고 있겠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정말 행복 하고 싶었습니다. 어린 시절 힘들고 괴로운 곳에서 도망치며 행복이라는 것이 내 눈앞에 다가오고 이제 막 손에 잡힐 것 같았는데 사실은 신기루였을 뿐. 지금 내 앞에 현실은 불행이라는 것이 가득하다는 것, 힘들다 말할 곳 하나 없고, 그저 이렇게 사람들을 바라보다가 또 내일을 살아가야 하는 내가 너무 괴롭고 힘들었습니다.

그렇게 혼자만의 대화 속에 내 몸과 마음이 이완되고 스스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고 기대하며 또 한 잔을 기울였습니다. 인간은 인간이라는 ‘나’라는 존재를 표현하기 위한 독특한 방법 중에 하나가 태어나면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끊임없이 소통하려 한다고 했습니다. 아기 때에는 칭얼거림의 울음소리로, 또 성장하면서는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사람들과 관계를 성숙시켜가며 그 안에서 ‘나’라는 존재를 표현하고 알리려 한다 했습니다. 하지만, 달리 불행 속에서 나를 표현할 방법이 없고, 말할 곳이 없었던 저는 술에 취해 스스로 참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습니다. 세상 비판도 하고, 세상 모든 슬픔은 나 혼자만의 슬픔이라 생각하며, 이 세상에서 가장 힘들고, 불행하고, 가난하고, 소외받은 사람은 나 스스로라 여기며 신을 원망하고, 나 스스로를 포기하고, 누구나 크고 작은 아픔을 겪는데 나만 세상 제일 큰 아픔들을 자꾸 겪는다고 자기연민에 그렇게 나를 죽이고 나 스스로를 원망하며 갉아먹고 그렇게 나를 버려가며 나를 제일 불쌍한 사람으로 만들며 하루하루를 지나오다 보니 어느덧,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습니다.

나는 이미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사람이 되었고, 너무 지쳐있었으며, 여전히 세상에서 제일 불쌍하고, 슬프고, 힘든 사람이었습니다. 이미 그때는 알코올 중독에 너무 깊이 빠져있었지만, 스스로 알코올 의존이 있는지, 병인지, 중독이 맞는지 어느 것도 몰랐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문득 스스로가 너무‘쓸모없는 인간’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랜 시간 술 마시며, 스스로에게 했던 대화들처럼 나 스스로가 너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란 생각이 들어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 스스로를 내려놓으며, 자살이란 것을 선택했습니다. 그저 내가 너무 불행하고, 앞날도 보이지 않고, 너무 지쳤거든요. 그렇게 자살 소동을 일으킨 후에도 나를 왜 살려 놨을까? 하는 생각으로 나를 다시 죽이며, 눈을 뜨면 술을 찾고 술에 의존하고, 사는 것에 회의를 느끼고 현실도피를 하며, 또 술을 마시고를 반복하며, 결국 작은딸아이와 엄마 손에 이끌려 알코올 중독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알코올 병원이란 곳에 입원하여 ‘나는 알코올 중독이 아니야’라며 몸부림쳤고, 한 달을 치료 거부하고 약을 거부하고 단식하며, 가족들을 원망하면서 병원에 있으니, 병원 선생님들과 치료사들의 교육을 들으며, 나는 깨달았습니다. ‘아, 내가 알코올 중독이었구나. 이것도 치료받아야 하는 병이구나.’ 그리고 이렇게 하나씩 스스로 아프단 것을 인정하면서 더 큰 것을 깨닫고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문득 생각이 났습니다. ‘이건 아니잖아 나의 부모처럼 내가 내 아이들을 병들어 있게 만들고 있었구나.. 나 혼자만 슬프고 힘들다고 생각했었는데, 알코올로 인해 변한 나로 인해 아이들이 나보다 더 아파하는 것을 내가 보지 못했구나... 그저 아이들이 성장하는 동안 돈만 버는 것이 목적이 아닌 엄마로서 자질이 많이 부족했구나...!’ 이제까지의 나 스스로를 갉아먹는 대화가 아닌 정말 진심에서 깊은 울림이 전해지는 탄식이 절로 내뱉어졌습니다. 전부는 아니겠지만 분명 한 겹의 벽이 허물어지는 것을 느끼며, 그 짧아진 거리만큼 다른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힘든 시간들이었지만 여전히 나를 응원하고 지지하며 믿어주는 나를 걱정하고 사랑해주는 가족들, 그리고 바로 ‘나’. 불행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가 아닌 세 아이의 엄마로서 가족 구성원으로서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많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제가 또다시 희망을 가지고 나아가려 합니다. 행복을 구걸하는 것이 아니라 저 스스로 행복을 찾으려 합니다. 20년이란 긴 알코올 의존을 정리하고, 회복(recovery)을 위해 센터 교육활동도 열심히 하고, 종교 활동을 통한 마음의 위안을 가지려 노력 중입니다. [희망은 어둠 속에서 시작된다. 일어나 옳은 일을 하려 할 때, 고집스러운 희망이 된다. 새벽은 올 것이다. 기다리고 보고 일하라, 포기하지 말라.]라는 성경 말씀을 통해 현재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현재 단주 일 년이라는 기간 동안 가족 구성원 안에서 내가 얼마나 ‘쓸모 있는’ 인간인지, 그리고 나의 소중한 아이들이 ‘나’라는 엄마를 얼마나 믿고 사랑하는지 알아가며, 나 혼자가 아닌 가족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나도 하면 할 수 있단 것을. 무능하지 않으며 하나씩 이겨나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으며 불행 속에 갇혀있던 나의 마음이 조금씩 긍정적인 에너지로 삶이 충만해지고 있단 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나의 부모가 그랬다고, 나의 지금 처한 환경이 힘들다고 더 이상 비판하지 않고, 누군가는 나를 좋은 사람으로 인식될 수 있도록 더 열심히 노력하며, 유혹에 빠지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을 극복하며 살아가려 합니다. 용서를 바라고 다른 이를 끌어안아주며 사랑의 마음을 간직하여 다시금 나의 50에 새로운 시작이 늦었다 생각하지 않고 스스로를 돌아보며, 나 스스로를 갉아먹던 생각을 제거하고 나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다는 마음가짐을 다시금 되새기며 앞으로는 조금씩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며 성공하는 보람도 느끼고, 나 스스로의 노력과 자존감을 높여가며 살아보려 합니다.

‘괜찮다, 앞으로는 다 괜찮아질 거야, 5분의 기적’이라는 말을 주문처럼 되새기며 어떤 난관이 다가와도 이겨나가며 이제까지 약해진 나의 힘을 다시 길러가며 하루하루를 감사하게 시작하며,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다시 한 번 ‘희망의 날개를 펴고’살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술은 나에게 필요 없는 위안이고 치료되는 병이라 배웠습니다. 지금현재 나는 현실도피를 하지 않는 건강한 엄마로써 자녀로써 건강한 정신으로 살아가겠습니다.

센터 선생님들의 응원과 교육, 종교의 힘으로 더더욱 발전하는 ‘나’자신을 위해 희망의 날개 짓을 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대학친구들을 만나는 것이 졸업한 지 정말 몇 년 만인가? 사실 대학동기 모임은 오늘이 처음이다. 다른 친구들이 사회에 나름대로 적응하기 시작할 무렵인 사십대 초반에는 난 이미 술에 젖어 들어 매일을 술과 살고 있었다. 그 때 우연히 만나게 되는 동기들에게도 끊임없이 술을 권하고... 결국은 크고 작은 실수를 해 버리고...정말 그 많은 실수 중에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모처럼 다른 친구가 연락을 하여 ○○모친상을 당했다는데, 마침 우리 중 아무도 내려가 볼 여유가 안되니 대표로 다녀오라고 해서, 연락을 받을 그 당시도 잔뜩 취해있는 상태였다. 그 밤에 시골까지 택시를 대절하여 갔다. 소주를 한 병 사들고... 물론 그 술이 모자라 택시를 중간에 세우고 한 병을 더 사서 마셨지. 상가에 도착했을 땐 이미 고주망태가 된 상태였다. 그런데 정말이지 지금도 입에 올리기도 민망스러운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빈소에 가서 억지로 문상차례를 끝내자 말자 시신을 기어히 보고싶다며 부득부득 우겼던 것이다. 당황한 친구가 너무나 황당했던 것은 물론이었고 백관들도 상주의 체면 때문에 어쩔 수 없었지만... 그 추태... 아! 술로 인한 실수들...

그리 수모를 당하니 끝내 연락마저 끊어버린 그 점잖은 친구들이, 어느 곁에 머리 희끗한 오십 줄에 들어서면서 느닷없이 나에게도 동기 망년회 모임의 초대장을 보내 주었던 것이다. 술을 끊었다는 소문이 동기들 하나 둘씩에게,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것이다. ‘그래, 이제야말로 나도 사람으로 인정 받는 것이구나’. 술잔을 놓은 지가 오년 째 되는 지금. 단주가 준 또 하나의 선물인 것이다. 아내도 그 초청장을 받은 날부터 화장대에 이를 올려놓고서 몇 번이가 보고 또 보며, 오는 사람마다에게 넌지시 자랑을 하였다
첫 번째 참석 병원에 퇴원하기 전에 사회사업가 선생님이 추천해 준 A.A(단주모임) 라는 이 곳. 도대체 무엇을 하는 곳인지 궁금하긴 했지만 나 혼자서는 선뜻 와 볼 용기가 나지 않아 집사람과 함께 어렵사리 찾아왔다. 먼저 온 사람들이 속속 도착하는 사람을 아주 반갑게 맞이한다. 난 어줍잖은 마음으로 괜스레 부자연스러워서 여기저기 눈길을 둘 마땅한 곳을 찾아 두리번거려 본다. 그러나 벽마다 붙어 있는 모임 안내 종이 혹은 신문에 소개된 것을 오려붙여 둔 듯한 A.A.에 관한 기사만 눈에 그득 들어온다. 집사람이 게시판 한 곳을 가리키면서 말을 걸지만 어떤 말도 하기 싫었다.

두 번째 참석 오늘에야 비로소 이곳에 모인 사람들의 면면을 조금이라도 살펴볼 여유가 생긴다. 나이 차이가 많은 사람들이 모였는데도 서로가 경어를 쓴다. 이야기하는 사람의 말을 아주 열심히 들어준다. 사실 난 남의 얘기에 귀를 잘 기울이지 않는 셈인데... 직업이나 이름은 밝히지 않으니 뭣하는 사람들인지는 몰라 궁금하긴 해도, 사실 그 점이 나의 마음을 편하게 해서 이렇게 다시 나오게 되었는지도... 그런데 여기 있는 사람들이 말하는 자기 경험담이란 얘기의 내용 중에는 어쩌면 그리도 내 경험과 비슷한, 아니 아예 꼭 같은 것이 있는지 깜짝 놀라기도 했다. 그래서 얘기하고 있는 사람을 유심히 보았는데, 내가 전혀 본 적도 없는 사람인지라 설마 나의 과거를 일부러 자기 경험담인 양 둘러대서 얘기 했을 리는 없다는 생각은 했지만... 그래서 병이라고 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나도 얼마간을 지나고 나면 저렇게 멀쩡해질 수 도 있을까? 정말 저렇게 멀쩡해질 수도 있을까?

세 번째 참석 여기에 오니까 우선 집사람이 너무 좋아하고 내 마음도 좀 편안해 지는 것 같다. 우선 부담이 없어 좋다. 억지로 말을 시키는 것도 아니라서 한 시간 내내 다른 사람이 이야기만 듣고 있어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아 좋다. 오늘은 나도 용기를 내어서 무슨말이라도 해 보고 싶었다. 그런데 딱 한 가지 불편하고 못마땅 것이 있다. 자기가 이야기하고 싶으면 꼭 ‘알코올중독자 ○입니다’라고 말하는, 아마 발언권을 얻는 표시로 그런 말을 하는가 본데, 그 말이 많은 부담을 주는 것이다. 그 말에 거부감이 생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른 사람들은 쉽사리 그렇게 말하고 있으면서도 아무렇지가 않는 모양인데... 솔직히 난 내 스스로 알코올중독자임을 받아들이게 되어 여기에 오긴 했지만 말로서 내 자신을 ‘알코올중독자 ○입니다’라고 하기에는 아직도 뭣하다.

네 번째 참석 그렇다. 편견 때문이었다. 내 자신이 아직도 나를, 나의 병을 혐오하고 있는 것이다. 내 문제에 정확하게 접근하고 있지 않는 것이다. 맞아. 병치고 그 증세가 보기 좋은 게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러니까 모두들 그 병에서 어서 빠져 나오려고 노력하는 것 일거야. ‘맹장염 환자 ○입니다’, ‘위장병 환자 ○입니다’와 다른 바 없다. 십 년 넘게 한 방울도 마시지 않고 있다고 다른 사람이 귀뜸해 준 저 분도 자기 병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다짐하려고 저렇게 자신을 시인 하지 않는가? 좋다! 언젠간 나도 저 분처럼 안 마시는 알코올중독자가 되어야지. 벌떡 일어난다. 그래, 어쩌면 이것이 내가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겠다는 최초의 선언이 되는 셈일지도 모른다. “알코올중독자 박입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여러분의 많은 도움 부탁드립니다. 이상입니다.”
알코올중독이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새삼스럽게 느꼈습니다. 내가 그 동안 하루 중에 언제 언제 마셔 왔는지 아주 환하게 알 수가 있었습니다. 술 마시던 시간이 되면 얼마나 갈증이 심하고 울화통이 터지는지, 화가 나서 술을 마신다는 핑계보다는 술 마실 때가 되어 화가 난다는 말이 맞음을 실감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 고비를 정말 넘겨야겠다고 단단히 결심하고서 술마시고 싶은 생각이 날 때마다 대신 사이다를 마시기로 작정했습니다. 우선 아침 일찍 눈이 뜨이면 사이다 한 병을 꿀꺽꿀꺽 마십니다. 아침밥은 술 마실때도 먹지 않아 술 끊고 나서도 도저히 먹지 못하겠더군요. 그렇게 해서 한 숨 자고 나면 오전 열 시정도 되거든요. 그때에야 시장기를 느끼게 되는데, 이때가 되면 막걸리 한 사발 생각이 간절히 나는 겁니다. 이 때 다시 사이다 한 병을 컵도 없이 그냥 병에 입을 댄 채 마십니다. 그게 소주라면 입도 안 떼고 한 병을 쉽게 다 마실 수가 있는데 사이다 한 병 마시기는 어찌 그리 힘이 들던지... 겨우 약 마시듯 먹고 헛트림 한번 하고 나면 괜히 부아가 치밀어 올라 뭐든 보이는 건 다 짜증스러워집니다. 안사람에게 생트집을 잡고 고래고래 화를 내기도 하지요.

나를 잡아둔 술의 힘이 얼마나 센것인지는 이것으로만 미루어 봐도 충분히 알겠더란 말입니다. 이런 술의 영향에 대해서 선생님의 설명을 듣지 않았더라면 다시 그 화를 못 이기도 마실뻔 했지요. 이게 다 몸에서 술부어 달라는 신호구나, 화장실 가고 싶을 때 몸이 느끼는 현상이 어떤 것인지는 어릴 때부터 알고 있으면서, 정잘 술이 당길 때는 어떤 정신상태가 되는지 어렴풋이나마 알게 된 지는 불과 일주일도 안 된 셈입니다. 이십년을 넘게 마셔 오면서도 말입니다. 이렇게 버티면서 낮에, 오후에, 저녁에, 그리고 밤에도 잠자리서 그저 눈 딱 감고 사이다 한 병 씩을 마시려니까 정말 이거야 할 짓이 아니더군요. 하지만 이렇게 조금씩 회복하고 있습니다.
우리 집안은 술로 인해 많은 피해를 경험한 집안이다. 아버님은 말년엔 사업 실패로 홧병 겸 술병으로 간경화를 얻어 50세를 못 넘기셨고, 작은 댁 삼촌 세 분 역시 모두 술로(심근경색증, 간경화 등)인해 요절하신 그야말로 단명집안이다. 나는 자라면서 절대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다짐했건만 우연히 이십대 중반 객지 (서울)에서 선배 술값 심부름을 갔다가 억지로 권하는 술을 입에 댄 게 화근이 되었다. 나는 아주 소심한 성격이라 갈수록 술만 들어가면 큰 소리도 나오고 자신이 한 행동도 모르는 상황이 생기면서 무슨 일이 발생하면 술에 의존하는 횟수가 많아졌다.

술도 취할 때 까지 많이 마셔야 직성이 풀리고 취중의 나도 기억나지 않는 행동들에 대해 가족과 이웃사람들에게 마음속으로 수도 없이 미안해하며 반성도 해 보지만 술 마시기 전 한두 잔만 마시겠다는 자신과의 맹세는 백번이면 백번 다 실패였다. 이러니 남들의 손가락질도 많이 받았고, 자력으로 도저히 끊을 자신이 없어 한 2년간 신앙에 매달려 보았지만, 결국 실패해서 술만 더 의지하게 될 뿐이었다. ‘○○대학병원 신경정신과’를 제 발로 찾아가서 15일간 입원도 해 봤지만 역시 무슨 일만 생기면 제일 먼저 술을 찾게 되는 알코올 중독증만 더 심화될 뿐이었다. 항상 술을 마시면 뭔가 ?기는 듯한 불안감과 초조함 또 우울감 마저 생겼다.

결국 2008년 뇌출혈로 쓰러져서 정신이 드니까 나 자신의 지금까지 해온 술에 대한 모든 행동이 엄청난 잘못 이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이젠 술을 먹어서도 안 되고 일주일에 한 번 단주모임 회원님들과 만나 알코올 강의를 듣게 되니 그야말로 기쁨이 넘치고 참으로 값진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한다. 작년 ‘뇌출혈’로 쓰러져 수술 후 6~7일 만에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사람으로 퇴원 후 변변찮은 생활 모습과 느낌을 한자 적어 본다. 병원 의사들조차도 기적이란 단어를 사용할 정도로 죽었다가 새로 다시 살아난 사람이라 두서없는 글이 되더라도 용서를 바란다. 워낙 소심한 성격이라 일이든, 대인관계든 일상생활에서 술 힘을 빌려 이삼십년 생활해 왔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밥 대신 술을 먼저 찾는 사람이니.... 손 떨림, 두근거림, 식은땀, 불안, 초조, 불면증 등 ‘알코올 의존증’ (중독)환자로서 경험할건 다 해 보며 술만 먹고 산 사람이라 집안 식구에게는 사람취급보다 알코올 환자 취급을 받고 술로 인해 삶을 포기한 사람 취급도 무수히 받았다. 두 번이나 모 병원 『알코올 병동』에서 보름씩 입원까지 했지만 끊기가 힘들었다. 이렇게 사람들 손가락질도 안중에 없는 내가 이번 퇴원 후 제일 겁난게 대인관계였다. 술로서 일하고, 술로서 대인관계하고, 매사에 술 없이는 생활이 힘든 사람이었으니까... 그러나 이번 퇴원하기 바로 전부터 『○○ 알코올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자신의 몸과 마음을 전적으로 의지했다. 강의를 들으면 들을수록 어쩜 그렇게도 마음에 와 닿는지... 내가 진작 알코올 교육을 받았다면 과연 ‘뇌출혈’로 쓰러졌을까 혼자서 자문해 본다.

이젠 이미 죽은 목숨이 덤으로 살아간다는 생각으로 이전의 고집, 자만, 독선 등 자신의 나쁜 병폐를 깡그리 모두 버리니 주변 사람들을 보는 이미지가 달라 보인다. 물론 술에 빠졌을 때의 내 모습이 너무 창피하고 초라하게 보이고... 술자리에선 음료수로, 술 취해 혼자 떠들던 못된 버릇은 남의 얘기에 더 귀 기울이는 자세로 변하고 이렇게 금주를 하다 보니 다른 사람들도 다들 술을 즐긴다는 사실을, 술에 취해 비틀비틀 활보하는 천한 모습들, 은연중 나오는 나쁜 습관들이 보인다. 그런 모습들이 바로 술 마실 때의 내 모습임을 알게 되니 너무나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하는 요즘이다. 무엇보다도 술로 인해 몸과 마음이 병에 찌들어 죽을 수밖에 없는 내 자신이 『알코올 프로그램』을 통해 『참 가족사랑』을 깨닫게 되니 가족들을 위해 하루하루 어떻게 도움을 줄건가 고민하게 되고 (설거지, 집청소, 약수물긷기 등 작은일들 조차도) 이제껏 술힘을 빌려서 해결하던 일상생활에서의 모든 일들을 금주하며 떳떳하게 처신해 나가니 너무나 기쁘다.

이제 앞으론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박수치며, 큰소리치며,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해 긍정적, 능동적, 적극적으로 살아갈 결심이다. 물론 하루하루 금주를 맹세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