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이 넘어가는 삶을 지나오며 돌이켜볼 때에 ‘쓸모’라는 단어는 세상 어떠한 단어보다 나에게 무서운 단어인 것 같습니다.
스스로 어디든 쓰일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다시금 돌아보니 어린 시절부터 나는 사실‘쓸모없는 사람’이지 않았었나? 하는 질문을 되뇌게 됩니다.
살아오며 첫 번째 희망을 가져보려 노력하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부모님께서는 정말 많이 싸우셨습니다.
술에 취해 싸우고 집에 있는 물건들을 부수고 때리고 피투성이 집안... 동생들을 돌보며 무섭고 힘든 상황을 이겨보려 노력했으나, 마음은 그렇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하루하루 ‘부모님 곁을 얼른 떠나고 싶다. 이 상황들을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으로 매일 매일을 버티고 또 견뎠습니다.
그렇게 성인이 되어 어느 날, 결혼이라는 달콤한 희망을 보게 되었습니다. 한 남자와 결혼을 하고, 세 아이의 엄마가 되고, 평범한 가정이라 생각했습니다.
어린 시절의 불우했던 나의 상황이 평범해졌다고 생각했습니다.
도망치듯 선택한 희망이라 그랬을까요? 결혼생활의 시간이 흐를수록, 남편과 저의 시간이 다르게 흘렀습니다.
처음과 달리 남편은 가정에 무관심해지더군요.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아들과 어린 두 딸이 있는데, 함께 아이들을 지키고 돌봐줘야 할 남편이 경제력을 상실하고, 밖으로 떠돌며 도박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가정을 지키기 위해 어린아이들을 뒤로한 채 회사를 다니며, 식당일 아르바이트 등 백방으로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나아질 수 있을 거라 믿었기에 아무리 고단하고 힘들어도 정말 열심히 일하고, 아이들을 그리고 가정을 지키려 헌신했습니다.
너무 쉼 없이 살아가고 있는 게 고단하여 사람 붐비는 곳에 멍하니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세상 가장 행복한 미소를 띠고 힘차게 걸어 다니는 사람,
지금 이 자리에 폭탄이 떨어진다 해도 놀라지 않을 만큼 무뚝뚝한 표정을 지닌 사람, 뜨거운 햇살이 불쾌한 지 잔뜩 화가 나있는 사람 등 그 어느 누구도 같은 얼굴, 같은 느낌, 같은 표정을 지닌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 모습들을 바라보며 드는 생각이 ‘그래도 여기 있는 모두들 행복 하고 싶고, 행복할 거라고 믿고 바라기 때문에 열심히 살아가고 있겠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정말 행복 하고 싶었습니다. 어린 시절 힘들고 괴로운 곳에서 도망치며 행복이라는 것이 내 눈앞에 다가오고 이제 막 손에 잡힐 것 같았는데 사실은 신기루였을 뿐.
지금 내 앞에 현실은 불행이라는 것이 가득하다는 것, 힘들다 말할 곳 하나 없고, 그저 이렇게 사람들을 바라보다가 또 내일을 살아가야 하는 내가 너무 괴롭고 힘들었습니다.
그렇게 혼자만의 대화 속에 내 몸과 마음이 이완되고 스스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고 기대하며 또 한 잔을 기울였습니다.
인간은 인간이라는 ‘나’라는 존재를 표현하기 위한 독특한 방법 중에 하나가 태어나면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끊임없이 소통하려 한다고 했습니다.
아기 때에는 칭얼거림의 울음소리로, 또 성장하면서는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사람들과 관계를 성숙시켜가며 그 안에서 ‘나’라는 존재를 표현하고 알리려 한다 했습니다.
하지만, 달리 불행 속에서 나를 표현할 방법이 없고, 말할 곳이 없었던 저는 술에 취해 스스로 참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습니다.
세상 비판도 하고, 세상 모든 슬픔은 나 혼자만의 슬픔이라 생각하며, 이 세상에서 가장 힘들고, 불행하고, 가난하고, 소외받은 사람은 나 스스로라 여기며 신을 원망하고,
나 스스로를 포기하고, 누구나 크고 작은 아픔을 겪는데 나만 세상 제일 큰 아픔들을 자꾸 겪는다고 자기연민에 그렇게 나를 죽이고 나 스스로를 원망하며 갉아먹고 그렇게 나를 버려가며
나를 제일 불쌍한 사람으로 만들며 하루하루를 지나오다 보니 어느덧,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습니다.
나는 이미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사람이 되었고, 너무 지쳐있었으며, 여전히 세상에서 제일 불쌍하고, 슬프고, 힘든 사람이었습니다.
이미 그때는 알코올 중독에 너무 깊이 빠져있었지만, 스스로 알코올 의존이 있는지, 병인지, 중독이 맞는지 어느 것도 몰랐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문득 스스로가 너무‘쓸모없는 인간’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랜 시간 술 마시며, 스스로에게 했던 대화들처럼 나 스스로가 너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란 생각이 들어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 스스로를 내려놓으며, 자살이란 것을 선택했습니다. 그저 내가 너무 불행하고, 앞날도 보이지 않고, 너무 지쳤거든요.
그렇게 자살 소동을 일으킨 후에도 나를 왜 살려 놨을까? 하는 생각으로 나를 다시 죽이며, 눈을 뜨면 술을 찾고 술에 의존하고, 사는 것에 회의를 느끼고 현실도피를 하며,
또 술을 마시고를 반복하며, 결국 작은딸아이와 엄마 손에 이끌려 알코올 중독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알코올 병원이란 곳에 입원하여 ‘나는 알코올 중독이 아니야’라며 몸부림쳤고, 한 달을 치료 거부하고 약을 거부하고 단식하며, 가족들을 원망하면서 병원에 있으니,
병원 선생님들과 치료사들의 교육을 들으며, 나는 깨달았습니다. ‘아, 내가 알코올 중독이었구나. 이것도 치료받아야 하는 병이구나.’
그리고 이렇게 하나씩 스스로 아프단 것을 인정하면서 더 큰 것을 깨닫고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문득 생각이 났습니다.
‘이건 아니잖아 나의 부모처럼 내가 내 아이들을 병들어 있게 만들고 있었구나.. 나 혼자만 슬프고 힘들다고 생각했었는데,
알코올로 인해 변한 나로 인해 아이들이 나보다 더 아파하는 것을 내가 보지 못했구나... 그저 아이들이 성장하는 동안 돈만 버는 것이 목적이 아닌 엄마로서 자질이 많이 부족했구나...!’
이제까지의 나 스스로를 갉아먹는 대화가 아닌 정말 진심에서 깊은 울림이 전해지는 탄식이 절로 내뱉어졌습니다.
전부는 아니겠지만 분명 한 겹의 벽이 허물어지는 것을 느끼며, 그 짧아진 거리만큼 다른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힘든 시간들이었지만 여전히 나를 응원하고 지지하며 믿어주는 나를 걱정하고 사랑해주는 가족들, 그리고 바로 ‘나’.
불행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가 아닌 세 아이의 엄마로서 가족 구성원으로서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많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제가 또다시 희망을 가지고 나아가려 합니다. 행복을 구걸하는 것이 아니라 저 스스로 행복을 찾으려 합니다.
20년이란 긴 알코올 의존을 정리하고, 회복(recovery)을 위해 센터 교육활동도 열심히 하고, 종교 활동을 통한 마음의 위안을 가지려 노력 중입니다.
[희망은 어둠 속에서 시작된다. 일어나 옳은 일을 하려 할 때, 고집스러운 희망이 된다. 새벽은 올 것이다. 기다리고 보고 일하라, 포기하지 말라.]라는 성경 말씀을 통해 현재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현재 단주 일 년이라는 기간 동안 가족 구성원 안에서 내가 얼마나 ‘쓸모 있는’ 인간인지, 그리고 나의 소중한 아이들이 ‘나’라는 엄마를 얼마나 믿고 사랑하는지 알아가며,
나 혼자가 아닌 가족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나도 하면 할 수 있단 것을.
무능하지 않으며 하나씩 이겨나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으며 불행 속에 갇혀있던 나의 마음이 조금씩 긍정적인 에너지로 삶이 충만해지고 있단 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나의 부모가 그랬다고, 나의 지금 처한 환경이 힘들다고 더 이상 비판하지 않고, 누군가는 나를 좋은 사람으로 인식될 수 있도록 더 열심히 노력하며,
유혹에 빠지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을 극복하며 살아가려 합니다. 용서를 바라고 다른 이를 끌어안아주며 사랑의 마음을 간직하여 다시금 나의 50에 새로운 시작이 늦었다 생각하지 않고 스스로를 돌아보며,
나 스스로를 갉아먹던 생각을 제거하고 나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다는 마음가짐을 다시금 되새기며 앞으로는 조금씩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며 성공하는 보람도 느끼고,
나 스스로의 노력과 자존감을 높여가며 살아보려 합니다.
‘괜찮다, 앞으로는 다 괜찮아질 거야, 5분의 기적’이라는 말을 주문처럼 되새기며 어떤 난관이 다가와도 이겨나가며 이제까지 약해진 나의 힘을 다시 길러가며 하루하루를 감사하게 시작하며,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다시 한 번 ‘희망의 날개를 펴고’살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술은 나에게 필요 없는 위안이고 치료되는 병이라 배웠습니다.
지금현재 나는 현실도피를 하지 않는 건강한 엄마로써 자녀로써 건강한 정신으로 살아가겠습니다.
센터 선생님들의 응원과 교육, 종교의 힘으로 더더욱 발전하는 ‘나’자신을 위해 희망의 날개 짓을 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