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알코올의존증은 '가족병'이다 / 최홍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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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가족은 환자의 변호사가 되어 변명을 하게 될까?
외래에서 알코올의존증 환자의 부인이나 가족들과 입원상담을 하다 보면 '어떻게 이 정도로 병이 악화 될 때까지 방치해 두었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이럴 경우 가족을 너무 몰아세우면 상담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으므로 의사는 조심스럽게 가족들에게 물어 보게 되는데 대체로 아래와 같은 몇가지 대답이 나옵니다.
“원래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그냥 애주가라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심해질지 몰랐네요. 남편이 스스로 힘들면 줄인다고 약속했는데....”
“병원에 안오려고하니 도저히 방법이 없었습니다.”
“알콜중독은 의지로 끊는 것 아닌가요? 억지로 어떻게 고칠수 있습니까?”
이렇게 가족의 대답이 환자가 하는 변명과 거의 일치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환자의 경우 자신의 문제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여 중독증을 인정하지 않고 병을 키워왔지만 가족들은 왜 이렇게 마치 환자의 변호사가 된 것처럼 변명을 해주는 걸까요?
환자를 무시하고 다그치며 무능력하다고 비난하는 배우자의 경우에서 치료에 어려움이 많지만, 위의 경우처럼 환자의 말을 곧이곧대로 따르고 치료에 대한 결정을 하지 못하는 경우 의존증이라는 병을 악화시키게 됩니다. 이런 가족들은 환자를 병원에 입원시키고도 안심이 안되어 몹시 불안해하며 환자가 금단증상을 벗어나서 신체기능이 호전되어 퇴원요구를 하게되면 환자의 말에 설득되어 의사말을 무시하고 치료를 중단하게 되는 잘못된 결정을 하게 됩니다.
‘내 남편은 아직은 그렇게 심하지 않을거야.. 이번에는 술을 반드시 끊는다고 하니 원하는데로 퇴원을 시켜보자. 한번만 더 믿어보자..'
그런데 자세히 물어보면 입원전에도 이런 약속을 이미 수차례하였고 끊는다고 해도 고작 몇주정도 였으며, 그나마 최근 들어서는 더욱 조절이 안되어 몸상태가 엉망이 되어 어쩔수 없이 입원결정을 하게 된 경우가 많습니다. 가족들과의 상담을 통해 그 마음을 들여다보면 환자에 대한 미움과 적개심, 더 이상 이대로 두면 안된다는 갈등, 환자가 원치 않는 입원을 결정한데에 대한 부담, 환자에 대한 죄책감 등 여러 가지 감정이 복합적으로 섞여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의사의 판단과 의견보다 환자의 말만 듣고 의사를 믿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게 됩니다. 왜 이런 일들이 생기는 걸까요?
알코올의존자와 오랜시간에 걸쳐 감정적인 갈등을 겪다보면 배우자와 가족들도 스트레스로 인해 우울증, 불안, 불면증등을 앓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환자의 증상에 가족의 감정이 반응을 하다보니 환자와 끊임없이 싸우다 미워하는 감정만 남게 되거나 환자의 지키지도 못하는 무책임한 약속에 끌려다니며 우유부단해지는 경우가 생깁니다. 이렇게 환자의 가족들이 겪는 감정적인 갈등으로 문제를 정상적으로 처리하고 판단하지 못하는 경우를 들어 가족도 환자처럼 의존증에 빠져있다는 의미로 ‘공동의존' 이라고 합니다.
특히 처음 병원에 방문하여 알코올 의존에 대한 치료를 받는 배우자의 경우는 이런 문제로 인해 치료를 중단될 수 있으므로 환자가 치료에 참여하기 전에 보호자와의 상담을 집중적으로 시행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가족을 치료하는 것이 더 우선이 되기도 합니다. 알코올의존은 오랜 기간에 걸쳐 환자의 부인, 남편, 자녀들이 감정적인 어려움을 겪게 되는 병이기에 ‘가족병'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기도 합니다.
자, 이제 환자의 병을 치료하기 전에 가족분들은 '내가 이 문제를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아니면 애써 외면하고 있었는지? 환자의 말대로만 무기력하게 따라가고 있는지?'를 먼저 생각해 보는게 중요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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